휘낭시에, 그 황금빛 욕망의 덩어리

"왜 이렇게 비싸요?"

2017년 봄, 파리 2구의 작은 파티스리.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과자 하나에 3.5유로. 원화로 5천원이 넘는 가격에 나는 망설였다. 그냥 평범한 갈색 과자처럼 보였는데.

"휘낭시에(Financier)예요. 금융가의 과자죠."

점원이 설명했지만,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비싸니까 금융가 과자인가? 아니면 부자들이 먹어서?

호기심에 하나를 샀다. 첫 입을 베어 무는 순간, 5천원이 아깝지 않았다.

겉은 바삭했지만 속은 놀랍도록 촉촉했다. 아몬드와 버터의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는데, 일반 버터와는 뭔가 달랐다. 헤이즐넛 같은, 캐러멜 같은, 묘한 향이 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향의 정체는 '뵈르 누아제트(Beurre Noisette)' - 갈색 버터였다. 그리고 이 작은 과자에는 19세기 파리 금융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금괴를 닮은 과자: 욕망의 상징

증권거래소의 점심시간

휘낭시에의 탄생은 19세기 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파리 증권거래소(Bourse de Paris) 주변은 프랑스 금융의 중심지였다.

매일 정오, 증권 중개인들은 짧은 점심시간에 쫓겼다. 정장을 더럽힐 수 없었고, 한 손으로 먹을 수 있어야 했으며, 주머니에 넣어도 부서지지 않아야 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휘낭시에다.

금괴 모양의 비밀

전통적인 휘낭시에는 작은 금괴 모양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돈을 벌고 싶으면 금을 먹어라"

당시 파리 금융가에 떠돌던 속설이었다. 제과점들은 이 심리를 이용해 과자를 금괴 모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많은 증권 중개인들이 행운의 부적처럼 휘낭시에를 먹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이 과자가 인기를 끌면서 금괴 모양이 더욱 강조되었고, '휘낭시에(금융가)'라는 이름이 확고해졌다.

비지탕딘에서 휘낭시에로: 수녀원의 유산

원조는 수녀원

사실 휘낭시에의 원조는 17세기 로렌 지방의 비지탕딘(Visitandine) 수녀원이다. '비지탕딘'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이 과자는 수녀들이 만들던 소박한 디저트였다.

당시 수녀원에는 기부받은 달걀 흰자가 넘쳐났다. 와인 제조 과정에서 청징제로 쓰고 남은 것들이었다. 버리기 아까운 흰자로 만든 것이 바로 이 과자의 시초다.

파리로의 여행

19세기, 이 레시피가 파리로 전해지면서 변신이 시작됐다. 파티시에들은:

  • 타원형을 직사각형으로 바꿨다
  • 아몬드를 더 많이 넣었다
  • 버터를 태워서 사용했다
  • 금융가들의 입맛에 맞춰 더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이렇게 수녀원의 소박한 과자는 파리 금융가의 럭셔리 디저트로 재탄생했다.

갈색 버터의 마법: 뵈르 누아제트

버터를 태운다는 발상

휘낭시에의 핵심은 '뵈르 누아제트(Beurre Noisette)'다. 직역하면 '헤이즐넛 버터'인데, 헤이즐넛이 들어간 게 아니라 버터를 태웠을 때 나는 향이 헤이즐넛을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처음 갈색 버터를 만들 때의 두려움이란! 비싼 버터를 태운다니. 실패하면 다 버려야 하는데.

갈색 버터의 과학

버터를 가열하면 훌륭한 변화가 일어난다:

온도별 변화

  • 1단계 (80-100°C): 수분 증발, 거품 발생
  • 2단계 (120-130°C): 유단백질 분리, 바닥에 가라앉음
  • 3단계 (140-150°C): 마이야르 반응 시작, 갈색으로 변함
  • 4단계 (150-180°C): 캐러멜화, 헤이즐넛 향 발생

이 과정에서 200가지가 넘는 향미 화합물이 생성된다. 그중에서도 디아세틸, 푸란, 피라진 등이 그 특유의 고소한 향을 만든다.

나의 갈색 버터 실패기

처음엔 무서워서 살짝만 노릇하게 했다. 향이 약했다. 두 번째는 용기를 내서 확실히 태웠다. 숯이 됐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깨달은 진리:

"거품이 가라앉고, 갈색 침전물이 보이고, 헤이즐넛 향이 확 올라올 때가 바로 그때다."

달걀 흰자의 비밀: 가볍고도 촉촉한

왜 흰자만 쓸까?

대부분의 케이크는 전란을 쓴다. 하지만 휘낭시에는 흰자만 쓴다. 왜일까?

  1. 질감: 노른자의 지방이 없어 더 가볍다
  2. 수분: 흰자의 90%가 수분으로 촉촉함 유지
  3. 단백질: 응고되면서 구조를 잡아준다
  4. 경제성: 와인 제조 후 남은 부산물 활용

거품을 내지 않는 이유

머랭이나 시폰케이크는 흰자로 거품을 낸다. 하지만 휘낭시에는 절대 거품을 내지 않는다.

"그냥 섞기만 하세요. 거품 내면 망쳐요."

파리의 한 파티시에가 해준 조언이었다. 거품을 내면 휘낭시에 특유의 촘촘하고 촉촉한 질감이 사라진다. 대신 가볍고 퍼석한 케이크가 되어버린다.

나의 실패 연대기

실패 1: 거대한 빵

처음엔 큰 틀에 구웠다.

결과: 겉은 타고 속은 익지 않은 거대한 빵이 나왔다.

원인: 휘낭시에는 작아야 한다. 열전도가 빠르게 일어나야 겉과 속의 질감 차이가 생긴다.

실패 2: 고무 덩어리

오래 구우면 더 바삭할 거라 생각했다.

결과: 질긴 고무 덩어리가 됐다.

원인: 과도한 단백질 응고. 정확한 시간이 중요하다.

실패 3: 기름 웅덩이

버터를 너무 많이 넣었다.

결과: 구우면서 기름이 다 빠져나왔다.

원인: 레시피 비율 무시. 버터는 정확히 계량해야 한다.

실패 4: 납작한 팬케이크

반죽을 바로 구웠다.

결과: 부풀지 않고 납작하게 퍼졌다.

원인: 휴지 시간 부족. 반죽도 쉬어야 한다.

조화로운 레시피: 312번의 도전 끝에

재료 (12개 분량)

  • 아몬드파우더 90g
  • 슈가파우더 150g
  • 박력분 50g
  • 달걀 흰자 150g (약 4-5개)
  • 버터 120g (갈색 버터용)
  • 바닐라 익스트랙 1작은술
  • 소금 한 꼬집

황금 비율의 비밀

312번의 실험 끝에 찾은 비율:

  • 아몬드 : 밀가루 = 2 : 1
  • 설탕 : 아몬드 = 1.7 : 1
  • 버터 : 전체 가루 = 1 : 2.4

이 비율이 바삭한 겉과 촉촉한 속을 만드는 열쇠다.

갈색 버터 만들기

  1. 버터를 작은 냄비에 넣고 중불에 올린다
  2. 거품이 생기면 약불로 줄인다
  3. 거품이 가라앉고 갈색 침전물이 보일 때까지 (약 5-7분)
  4. 헤이즐넛 향이 확 올라오면 불을 끈다
  5. 바로 다른 그릇에 옮겨 식힌다 (안 그러면 계속 타버림)

반죽의 포인트

  1. 건식 재료 먼저: 아몬드파우더, 슈가파우더, 박력분, 소금을 섞는다
  2. 흰자는 절대 거품 내지 않기: 그냥 풀어주기만
  3. 한 번에 섞기: 흰자를 가루에 붓고 한 번에 섞는다
  4. 갈색 버터는 미지근하게: 너무 뜨거우면 흰자가 익는다
  5. 휴지는 필수: 최소 2시간, 하룻밤이 최고

굽기의 예술

  • 오븐 온도: 200°C
  • 굽기 시간: 12-15분
  • 성공 신호: 가장자리가 진한 갈색, 중앙이 볼록

틀의 진화: 금괴에서 조개껍질까지

전통적인 금괴 틀

가장 클래식한 직사각형. 금괴를 닮은 이 모양이 정통이다.

타원형 틀

원조인 비지탕딘의 모양. 좀 더 우아하고 여성스럽다.

마들렌 틀

"마들렌 틀밖에 없는데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써도 된다! 프랑스 가정에서도 그렇게 한다.

미니 머핀 틀

현대적 변형. 한 입 크기로 먹기 좋다.

뵈르 누아제트의 심화 과학

온도별 분자 변화의 스펙트럼

갈색 버터를 만들며 GC-MS(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온도별 화합물 생성

  • 100°C: 수분 증발, 부티르산, 카프로산 - 신선한 버터 향
  • 120°C: 단백질 변성, 디아세틸, 아세토인 - 버터스카치 향
  • 140°C: 초기 마이야르, 푸란 계열 - 견과류, 캐러멜 향
  • 150-165°C: 최적 갈변, 피라진 계열 - 헤이즐넛, 토피 향
  • 170°C 이상: 과도한 갈변, 벤조피렌 - 쓴맛, 탄 냄새

밀크 솔리드의 비밀

버터 속 밀크 솔리드는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다:

구성 성분

  • 카제인(80%): 주요 단백질, 열에 민감
  • 유청 단백질(20%): 라이소자임, 락토페린
  • 락토스: 유당, 환원당으로 마이야르 반응 주역
  • 미네랄: 칼슘, 인, 마그네슘

반응 메커니즘:

  1. 라이신(카제인) + 락토스 → 슈프베이스
  2. 슈프베이스 → 아마도리 화합물
  3. 아마도리 화합물 → 케토사민
  4. 케토사민 → 향기 화합물 + 갈색 색소

아몬드 파우더의 비밀: 50%의 기름이 만드는 마법

아몬드의 구성 성분

아몬드는 견과류의 왕이다. 그 이유는 조화로운 구성에 있다:

  • 지방: 49-50% (주로 올레산)
  • 단백질: 21-22%
  • 탄수화물: 20% (섬유질 포함)
  • 수분: 4-5%

이 50%의 지방이 휘낭시에를 특별하게 만든다.

입자 크기의 중요성

시중 아몬드 파우더의 입자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내가 측정한 결과:

  • 초미세 분말 (50μm 이하): 너무 밀도 높음
  • 일반 분말 (100-200μm): 최적
  • 거친 분말 (300μm 이상): 질감 불균일

100-200μm가 최적인 이유? 적당한 기름 방출과 수분 흡수의 균형이다.

아몬드 오일의 역할

아몬드를 갈면 세포벽이 파괴되며 오일이 나온다. 이 오일이:

  1. 유화제 역할: 버터와 흰자를 연결
  2. 보습제 역할: 수분 증발 방지
  3. 향미 전달체: 지용성 향을 퍼뜨림

신선한 아몬드 파우더와 오래된 것의 차이는 이 오일의 산패 여부다.

나만의 혁신: 312번의 실험이 만든 비법

온도 프로파일링

전통적 방법: 200°C 일정 온도

나의 방법: 온도 변화

  • 처음 5분: 220°C (급속 크러스트)
  • 다음 5분: 200°C (내부 익힘)
  • 마지막 5분: 180°C (과도한 갈변 방지)

결과: 더 균일한 색, 더 바삭한 표면

이중 버터 기법

일반적: 갈색 버터만 사용

나의 혁신:

  • 70% 갈색 버터 (향미)
  • 30% 일반 녹인 버터 (수분)

이유: 갈색 버터는 수분이 없어 건조해질 수 있다. 일반 버터의 수분이 균형을 맞춘다.

pH 조절의 마법

흰자의 알칼리성(pH 9.0)이 때로는 독이 된다.

나의 해결책:

  • 레몬즙 3방울 (0.5ml)
  • 또는 크림타르타르 0.5g
  • 목표 pH: 8.3-8.5

효과:

  • 마이야르 반응 최적화
  • 쓴맛 감소
  • 색상 균일도 향상

휘낭시에가 가르쳐준 것

본질의 중요성

휘낭시에는 단순하다. 흰자, 아몬드, 버터, 설탕, 밀가루. 이게 전부다. 하지만 각 재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갈색 버터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과자가 특별해진다.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디테일에 집중할 때 진짜 맛이 나온다.

변신의 가치

17세기 수녀원의 소박한 과자가 19세기 파리의 럭셔리 디저트가 되었다. 똑같은 재료, 비슷한 방법인데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전통을 지키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휘낭시에가 준 교훈이다.

작은 사치의 즐거움

5천원짜리 과자가 비싸다고 생각했던 나. 하지만 그 작은 사치가 주는 만족감은 가격 이상이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은 자신에게 작은 사치를 허락하는 것. 그것도 삶의 기술이다.

금융가와 수녀원의 아이러니

두 개의 세계, 하나의 과자

피낭시에의 역사를 파헤칠수록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한쪽엔 17세기 비지탕딘 수녀원. 세속을 떠나 신에게 헌신한 수녀들이 남은 달걀 흰자로 만든 소박한 과자.

다른 한쪽엔 19세기 파리 증권거래소. 돈과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곳에서 금괴 모양으로 변신한 럭셔리 디저트.

같은 레시피, 다른 의미. 수녀원의 검소함이 금융가의 사치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음식의 사회학이다.

라슨의 마케팅 천재성

1890년, 파티시에 라슨(Lasne)은 천재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루 생드니(Rue Saint-Denis)에 위치한 그의 가게는 파리 증권거래소에서 도보 5분 거리. 매일 정오, 양복 입은 금융인들이 그의 가게 앞을 지나갔다.

라슨의 통찰

  • 타겟: 바쁘고 부유한 금융인
  • 니즈: 한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고급 간식
  • 전략: 금괴 모양으로 만들어 심리적 어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금을 먹으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까지 생겨났다.

철학적 성찰: 금융과 과자의 아이러니

부의 상징에서 일상의 행복으로

19세기 금융가의 사치품이 21세기 모두의 간식이 되었다. 이것이 민주화일까, 상품화일까?

휘낭시에를 만들며 생각한다. 금괴 모양의 이 과자가 진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어쩌면 "작은 사치가 주는 큰 행복"이 아닐까.

시간의 가치

휘낭시에 하나를 만드는 시간:

  • 갈색 버터: 10분
  • 반죽: 10분
  • 휴지: 120분
  • 굽기: 15분
  • 총 155분

2시간 35분. 편의점 과자는 2분이면 산다. 하지만 직접 만든 휘낭시에를 먹는 그 순간의 만족감은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다.

에필로그: 황금빛 꿈을 굽다

어제도 휘낭시에를 구웠다. 312번째.

오븐 앞에 서서 갈색 버터가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17세기 수녀들도 이 향을 맡았을까? 19세기 금융인들은 정말 이 과자를 먹으며 부자가 되길 빌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작은 과자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형태는 바뀌고 이름도 바뀌었지만, 그 본질 - 버터와 아몬드, 달걀 흰자가 만드는 마법 - 은 변하지 않았다.

오늘도 버터를 태운다. 거품이 일고, 갈색으로 변하고, 헤이즐넛 향이 올라오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금괴를 만드는 게 아니다. 행복을 굽는 것이다.

작은 사치가 주는 큰 만족. 그것이 휘낭시에가 내게 가르쳐준 삶의 지혜다.

P.S. 혹시 갈색 버터가 타버렸다고 좌절하지 마시길. 나는 처음 1kg을 태웠지만, 그 실패작으로 만든 브라운 버터 파스타는 인생 우수한 맛이었다. 실패도 때로는 새로운 시작이다.

에필로그: 313번째를 준비하며

오늘도 버터를 녹인다. 거품이 일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갈색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312번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설렌다. 헤이즐넛 향이 올라오는 순간, 나는 다시 파리의 그 작은 파티스리에 서 있다.

"왜 이렇게 비싸요?"라고 묻던 그때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이 작은 과자 하나에는 수백 년의 역사와, 수백 가지의 향과, 만드는 이의 정성이 들어있어. 그러니 5천원이 아깝지 않지."

갈색 버터의 향기가 주방을 가득 채운다.
황금빛 욕망이 아닌, 황금빛 행복을 굽는 중이다.

Bon appé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