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실패, 그리고 깨달음

2018년 겨울, 처음으로 수정과를 만들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마트에서 사온 계피 스틱 한 봉지와 생강 한 덩어리. "이게 뭐 어렵겠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나는 3시간 후 주방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계피의 매운 향에 코가 맵고 눈이 따가워서 눈물이 났던 것이지만.

첫 번째 수정과는... 약이었다.

한약방에서나 맡을 법한 쓰디쓴 계피물. 단맛은 온데간데없고, 생강의 알싸한 맛만 가득했다. 곶감을 띄워봤지만 그저 쓴물에 떠 있는 곶감일 뿐이었다.

"이게 정말 조선 왕실에서 마셨다는 그 귀한 음료란 말인가?"

그날 밤, 나는 수정과의 역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수정과를 우습게 봤는지를.

왕의 음료에서 민초의 위로가 되기까지

수정과가 처음 기록된 건 1765년 『수작의궤(受爵儀軌)』였다. 영조 41년, 지금으로부터 260년 전의 일이다.

더 훌륭한 건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나오는 궁중 잔칫상의 수정과 종류가 20여 가지였다는 사실. 곶감 수정과는 기본이고, 배, 유자, 준시, 앵두, 복분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과일로 수정과를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수정과는 지금으로 치면 송로버섯이나 철갑상어 캐비어 이상의 사치품이었다. 계피와 후추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고, 설탕은 사탕수수가 열대작물이라 조선에서는 재배 자체가 불가능했다.

양반들조차 임금이 하사할 때나 맛볼 수 있었던 귀한 음료. 그것이 수정과였다.

조선시대 한 양반이 이런 시를 남겼다고 한다:

"벌처럼 달고 타락(우유)처럼 진한 맛, 봄 쟁반에 처음 내어온 수정과. 새해마다 한 번씩 마신 것을 세어 보니 예순다섯 잔이나 마셔서 없앴네"

65년 인생에 65잔. 일 년에 한 잔씩만 마실 수 있었던 귀한 음료였던 것이다.

37번의 도전, 그리고 발견한 비밀

첫 실패 이후, 나는 수정과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 두 번째 시도: 계피를 너무 많이 넣어 입천장이 얼얼했다.
• 세 번째 시도: 생강을 너무 오래 끓여 쓴맛만 남았다.
• 네 번째 시도: 설탕을 너무 일찍 넣어 타버렸다.
• 다섯 번째 시도: 곶감이 너무 빨리 풀어져 죽처럼 되었다.

매번 실패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깨달아갔다. 수정과는 단순히 재료를 끓이는 음료가 아니라, 시간과 온도, 그리고 순서의 예술이었다.

동의보감에도 나와 있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함께 끓이면 서로의 향을 죽인다. 계피의 달콤한 향과 생강의 알싸한 향이 충돌하여 어중간한 맛이 되어버린다.

센 불에서 끓이면 계피의 매운맛만 추출되고, 너무 약한 불에서는 향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중약불에서 은근히, 마치 차를 우리듯 끓여야 한다.

계피는 60-70도의 물에서, 생강은 80-90도의 물에서 가장 좋은 향을 낸다. 그래서 처음부터 끓는 물이 아닌, 미지근한 물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37번째 시도에서...

드디어 그 맛이 났다. 계피의 달콤함과 생강의 알싸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곶감의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에 퍼지는, 그야말로 '왕의 음료'다운 수정과가 완성되었다.

계피, 그 오래된 향신료의 비밀

계피에 대해 공부하면서 놀란 것은 우리가 흔히 '계피'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 두 가지 완전히 다른 식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수정과에는 어떤 계피를 써야 할까?

전통적으로는 카시아를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을 통해서만 계피를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수정과는 두 가지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것이 좋다.

• 실론 7 : 카시아 3의 비율이 가장 이상적이다.
• 실론의 부드러움과 카시아의 강렬함이 조화를 이룬다.
• 단, 카시아에는 쿠마린이라는 성분이 있어 과다섭취는 피해야 한다.

생강, 알싸한 맛의 과학

생강의 매운맛 성분인 진저롤(gingerol)은 가열하면 쇼가올(shogaol)로 변한다. 이 변화가 수정과의 맛을 좌우한다.

수정과에서는 이 두 가지 맛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래서 생강을 두 번에 나누어 넣는다.

• 처음에는 편으로 썰어 은근히 끓여 쇼가올의 깊은 맛을 낸다.
• 마지막에는 즙을 내어 넣어 진저롤의 상쾌함을 더한다.

곶감, 단맛의 정점

수정과에 곶감을 넣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부터다. 그전에는 꿀이나 조청으로 단맛을 냈다.

곶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수정과에 띄운 곶감은 계피와 생강의 향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단맛을 내어준다. 일종의 '맛의 교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잣, 마지막 화룡점정

수정과 위에 동동 뜬 잣. 그저 장식일까?

아니다. 잣의 고소한 기름 성분이 수정과의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게다가 잣에는 피노렌산이라는 특별한 지방산이 있어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준다.

궁중에서는 잣을 까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었다고 한다. 까만 껍질을 벗겨내고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과정이 마치 번뇌를 벗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과 같다 하여, 스님들이 수정과에 잣을 띄워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수정과와 한국의 차 문화

수정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한국 차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차 문화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정신수양과 예절, 그리고 소통의 매개체였습니다.

🔬 수정과의 과학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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