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플, 와플기가 만든 기적

크루아상과 와플의 새로운 만남

첫 만남: 금호동 골목길에서의 충격

"이게 뭐예요?"

2020년 초봄, 금호동 작은 골목. 평일 오후인데도 카페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으며 물었더니, 알바생이 대답했다.

"크로플이요. 크루아상을 와플기에 구운 거예요."

크루아상을 와플기에? 처음 듣는 조합이었다. 호기심 반, 의구심 반으로 40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접시를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이 만든 혁명이었다.

갓 구운 크로플 위에 올려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시나몬 파우더가 솔솔 뿌려진 표면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하는 소리와 함께 27겹의 페이스트리 층이 입안에서 춤을 췄다.

"이거... 천재 아니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옆 테이블 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과 필연: 크로플의 탄생

팬데믹이 만든 창의성

크로플은 달고나 커피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범유행 시기인 2020년 대한민국에서 가정용 와플기에 식빵, 감자채, 누룽지, 떡 등을 넣어 눌러 먹는 것이 유행하면서, 크루아상 반죽을 넣어 만든 크로플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집콕 시대, 우리는 와플기로 온갖 실험을 했다. 식빵도 구워보고, 떡도 눌러보고, 심지어 라면도 넣어봤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크루아상을 넣어봤다. 그리고 마법이 일어났다.

아일랜드에서 한국으로

사실 크로플의 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아일랜드의 체인점 빵집인 퀴진 드 프랑스에서 제빵사 루이즈 레넉스와 콜라보해 만든 크로플을 캠든가 9번지 팝업스토어 라 프티 불랑제리에서 2주 간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로플이 진짜 빛을 본 것은 한국에서였다. 왜 하필 한국이었을까?

아우프글렛: 원조의 시작

2018년 10월, 운명의 개업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에 크로플이 알려지게 된 시초는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아우프글렛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에 개점한 당시 신생 카페였는데, 인테리어와 음식이 소문이 났고, 2019년 초부터 맛집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건축, 인테리어, 사진과 커피를 전문적으로 하는 여섯 명의 대표가 모여 만든 만큼 감각적인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창업자들의 철학

"노래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공간"

아우프글렛(Aufglet)의 이름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독일어 'Aufglegen'(노래를 튼다)의 과거형을 스위스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복잡한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접근도 남달랐다.

6명의 전문가가 모여 만든 이 공간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 조 콜롬보 조명, 바실리 체어... 모든 것이 계산된 미학이었다.

크로플의 과학: 압력이 만드는 마법

와플기의 물리학

일반 크루아상과 크로플의 가장 큰 차이는 '압력'이다.

와플기 조건

  • 와플기의 온도: 180-200°C
  • 압력: 약 2-3kg/cm²
  • 시간: 3-4분

이 조건에서 훌륭한 일이 일어난다:

  1. 표면의 캐러멜화: 크루아상 표면의 당분이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빠르게 캐러멜화된다
  2. 층의 압축: 27겹의 페이스트리 층이 압축되며 더 뚜렷해진다
  3. 버터의 재분배: 녹은 버터가 균일하게 퍼지며 바삭함을 향상한다
  4. 수분의 급속 증발: 표면의 수분이 빠르게 날아가며 크리스피한 식감을 만든다

I suggest cooking them at a medium temperature to allow the croissant to be fully cooked through without becoming too brown.

메이야르 반응의 가속화

와플기의 직접적인 열전도는 일반 오븐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이로 인해 메이야르 반응이 가속화되어:

  • 더 진한 갈색
  • 더 강한 고소한 향
  • 더 복잡한 풍미

가 만들어진다.

나의 크로플 실험기

실패 1: 타버린 첫 시도

"와플기 최고 온도면 더 바삭하겠지?"

집에 있던 와플기를 최고 온도로 예열했다. 크루아상을 넣고 3분. 연기가 피어올랐다.

겉은 숯, 속은 날것.

내 첫 크로플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실패 2: 눌러버린 페이스트리

"세게 누르면 더 얇고 바삭할 거야!"

두 번째 시도. 와플기를 있는 힘껏 눌렀다. '뿌직' 소리와 함께 버터가 사방으로 튀었다.

결과물은 기름에 젖은 납작한 전병.

크루아상의 층이 다 무너져버렸다.

실패 3: 설탕의 재앙

Dipping the croissants in sugar creates the most delicious caramelized crust with the perfect golden brown colour. Don't skip this step!

팁을 듣고 설탕을 왕창 뿌렸다. 아니, 설탕 그릇에 크루아상을 담갔다.

결과는? 설탕이 타면서 쓴맛이 났고, 와플기는 눌어붙은 캐러멜로 뒤덮였다.

청소하는 데만 한 시간.

성공의 순간

147번째 시도. (네, 정말로 세어봤습니다)

  • 와플기 온도: 중간 (약 180°C)
  • 설탕: 살짝만 롤링
  • 압력: 자연스럽게 뚜껑의 무게만으로
  • 시간: 3분 30초

"바삭"

조화로운 소리였다. 황금빛 표면, 선명한 층, 버터의 향기.

드디어 성공이었다.

한국형 크로플의 진화

K-크로플의 탄생

한국 카페들은 크로플을 단순히 따라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인절미 크로플

인절미 가루 + 바닐라 아이스크림 + 연유

앙버터 크로플

팥앙금 + 버터 + 생크림

티라미수 크로플

마스카포네 크림 + 코코아 파우더

브라운치즈 크로플

노르웨이 브라운치즈 + 캐러멜 시럽

이건 더 이상 프랑스 디저트가 아니었다. 한국의 창의성이 만든 새로운 장르였다.

토핑의 과학과 예술

"토핑을 올리려면 반으로 갈라야 하는 크루아상과 달리 크로플은 평평하고 홈이 있기 때문에 토핑을 올리기 좋다"

이것이 크로플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와플의 격자무늬가 만든 작은 웅덩이들은 조화로운 토핑 홀더가 되었다.

내가 실험해본 우수한 조합들:

  1. 온도의 대비: 뜨거운 크로플 + 차가운 아이스크림
  2. 질감의 대비: 바삭한 표면 + 부드러운 크림
  3. 맛의 대비: 버터의 고소함 + 과일의 산미

크로플 레시피: 147번의 실패가 만든 완벽

재료 (4개 분량)

크로플

  • 냉동 크루아상 생지 4개 (또는 냉동 크루아상)
  • 그래뉴당 4큰술 (롤링용)
  • 버터 약간 (와플기용)

기본 토핑

  • 바닐라 아이스크림 4스쿱
  • 메이플 시럽
  • 시나몬 파우더

도구

  • 와플기 (벨기에식 추천)
  • 실리콘 브러시
  • 집게

준비 과정

1. 해동의 기술

  • 냉동 생지: 실온에서 20-30분
  • 냉동 크루아상: 냉장고에서 하룻밤 (Whole Foods 추천)

"처음엔 성급하게 전자레인지를 썼다. 결과는 처참했다. 겉은 녹고 속은 얼어있는 이상한 물체가 되었다."

2. 설탕 롤링

  • 접시에 설탕을 펼친다
  • 해동된 크루아상을 가볍게 굴린다
  • 너무 많이 묻히지 않는다 (경험상 이게 중요)

3. 와플기 준비

  • 중간 온도로 예열 (180°C)
  • 실리콘 브러시로 버터를 살짝 바른다
  • 너무 많이 바르면 기름에 튀긴 크로플이 된다

굽기 과정

1. 배치

Place the prepared dough in the center of the waffle iron

중앙에 정확히 놓는 것이 중요하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두께가 달라진다.

2. 압력

Close the lid and cook for 3-4 minutes

살짝 눌러주되, 체중을 실어 누르지 않는다. 와플기 자체 무게로 충분하다.

3. 확인

  • 2분 30초: 살짝 열어 확인
  • 3분: 황금빛이 돌기 시작
  • 3분 30초: 가장자리가 진한 갈색
  • 4분: 너무 진하면 중단

4. 마무리

The croffle is done when it is a light golden brown color with crisp edges

꺼낸 직후가 가장 위험하다. 뜨거운 증기, 녹은 버터, 캐러멜화된 설탕. 조심히 꺼내 식힘망에 올린다.

크로플 토핑의 무한 변주

클래식: 아우프글렛 스타일

바삭하고 쫄깃한 크로플 위에 올라가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까지 직접 만드는데 아이스크림 위로 시나몬 파우더를 뿌려 풍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조합의 비밀

  • 온도: 뜨거운 크로플(60°C) + 차가운 아이스크림(-5°C)
  • 질감: 바삭함 + 크리미함
  • 향: 버터 + 바닐라 + 시나몬

한국형 변주 1: 인절미 크로플

내가 처음 인절미 크로플을 만든 날, 프랑스 친구가 놀러 왔다.

"이게 크루아상이야?"

그는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한 입 먹고는:

"C'est génial!" (천재적이야!)

레시피

  1. 크로플을 굽는다
  2. 인절미 가루를 듬뿍 뿌린다
  3.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올린다
  4. 연유를 지그재그로 뿌린다
  5. 인절미 조각을 올린다

한국형 변주 2: 앙버터 크로플

크루아상과 앙버터의 만남.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레시피

  1. 크로플을 굽는다
  2. 버터 슬라이스 (0.5cm 두께)를 올린다
  3. 팥앙금을 듬뿍 올린다
  4. 생크림을 짜준다
  5. 슈가파우더로 마무리

프리미엄 변주: 브라운치즈 크로플

노르웨이 브라운치즈의 캐러멜 같은 단맛과 크로플의 조합. 합정 '페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레시피

  1. 크로플을 굽는다
  2. 캐러멜 시럽을 뿌린다
  3. 브라운치즈를 갈아 올린다
  4. 레몬 제스트로 마무리

"처음엔 치즈를 너무 두껍게 잘라 올렸다. 녹지도 않고 맛도 너무 강했다. 치즈 그레이터로 갈아 올리니 완벽했다."

크로플 철학: 실수가 만든 혁명

하이브리드의 미학

크로플은 태생부터 하이브리드다. 프랑스의 크루아상과 벨기에의 와플. 두 나라의 자존심이 한국의 와플기에서 만났다.

이것은 단순한 퓨전이 아니다.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가 된 것이다.

  • 크루아상의 27겹 층은 그대로
  • 와플의 격자무늬도 그대로
  • 하지만 둘이 합쳐진 크로플은 전혀 다른 존재

창의성의 민주화

"크루아상 생지는 냉동으로 입고되기 때문에 간편하고 원가도 저렴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많은 카페에서 애용하는 메뉴다."

크로플의 가장 큰 매력은 접근성이다.

  • 크루아상을 처음부터 만들려면? 이틀이 걸린다
  • 크로플을 만들려면? 30분이면 충분하다

이 간단함이 수많은 창의적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불완전함의 완벽

내가 만든 147개의 크로플 중 조화로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 어떤 것은 한쪽이 더 두꺼웠고
  • 어떤 것은 설탕이 고르지 않았고
  • 어떤 것은 층이 조금 뭉개졌다

하지만 그게 크로플의 매력이었다.

매번 다른 모양, 매번 다른 바삭함의 정도. 집에서 만드는 크로플은 카페의 그것과 달랐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다.

크로플이 가르쳐준 것들

고정관념의 파괴

"크루아상은 오븐에 구워야 한다"

"와플은 반죽을 부어 만든다"

누가 정했나?

크로플은 이런 고정관념을 가볍게 부수며 탄생했다. 가끔은 엉뚱한 시도가 혁신이 된다.

타이밍의 중요성

아일랜드에서 2017년에 시도했지만 큰 반향이 없었던 크로플.
한국에서 2020년에 폭발적으로 유행한 크로플.

같은 아이디어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홈카페 문화의 확산, SNS의 영향력.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타이밍이었다.

진화의 가능성

처음 크로플은 단순했다. 크루아상을 와플기에 구운 것. 끝.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 인절미를 올리고
  • 앙버터를 넣고
  • 티라미수로 변신시키고
  • 브라운치즈까지 올렸다

창의성에는 국경이 없다.

나만의 크로플 레시피: 147번의 도전 끝에

얼그레이 크림 크로플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창작품이다.

재료

  • 크로플 4개
  • 생크림 200ml
  • 얼그레이 티백 2개
  • 설탕 2큰술
  • 레몬 제스트
  • 베르가못 오일 2방울 (선택)

만들기

  1. 생크림을 60도로 데운다
  2. 얼그레이 티백을 넣고 10분 우린다
  3. 티백을 제거하고 식힌다
  4. 설탕을 넣고 휘핑한다
  5. 크로플 위에 올리고 레몬 제스트로 마무리

"처음엔 티백을 너무 오래 우려 쓴맛이 났다. 온도와 시간의 균형을 찾는 데 20번은 시도했다."

크로플의 미래

진화는 계속된다

  • 2020년: 기본 크로플
  • 2021년: 한국형 토핑의 등장
  • 2022년: 크룽지(크루아상+누룽지)의 탄생
  • 2023년: 크루키(크루아상+쿠키)의 유행
  • 2024년: ?

크로플이 보여준 가능성은 무한하다. 다음은 무엇일까?

글로벌 크로플

이미 크로플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온 빵"으로 인기를 끌고 있고, 미국에서도 K-Croffle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각 나라의 문화와 만나 또 어떤 변신을 할지 기대된다.

마지막 한 입

어제도 크로플을 만들었다. 148번째.

이번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김치를 올려봤다.

...

실패였다.

하지만 149번째엔 뭔가 다른 걸 시도할 것이다. 크로플이 가르쳐준 교훈이니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엉뚱해도 시도해보라고.

오늘 카페에 가면 크로플을 주문해보시길. 그리고 집에 와플기가 있다면 직접 만들어보시길.

당신의 147번째 크로플은 어떤 모습일까?

P.S. 와플기 청소 팁: 설탕이 눌어붙었을 때는 젖은 수건을 올려놓고 와플기를 살짝 데우면 쉽게 닦인다. 147번의 실패가 가르쳐준 또 하나의 지혜다.

P.P.S. 최근 우리집 와플기가 크로플 전용이 되어버렸다. 일반 와플? 그게 뭐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