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피렌체 산타 크로체 광장.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막혔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고 나왔지만, 감동보다는 더위가 먼저였다.
작은 젤라테리아를 발견했다. 비볼리(Vivoli). 1930년부터 이어온 곳이라고 했다.
"우노 아포가토, 페르 파보레."
처음 시킨 아포가토. 투명한 유리잔에 바닐라 젤라또 한 스쿱. 그리고 별도의 작은 컵에 담긴 에스프레소.
"Versa quando vuoi." (원할 때 부으세요)
점원의 말에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에스프레소를 젤라또 위에 천천히 부었다. 검은 에스프레소가 하얀 젤라또를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용암이 눈 위를 흐르는 것 같았다.
첫 숟가락. 차가움과 뜨거움이 동시에. 달콤함과 쓴맛이 한꺼번에. 그 순간, 피렌체의 더위가 사라졌다.
이것이 내가 아포가토에 '빠져 죽은' 첫 순간이었다.
익사한 디저트, 이름의 미학
아포가토(Affogato). 이탈리아어로 '익사하다', '빠져 죽다'라는 뜻이다.
정확한 이름은 '아포가토 알 카페(Affogato al caffè)'. 커피에 익사한 것. 하얀 젤라또가 검은 에스프레소의 바다에 빠져 서서히 녹아내리는 모습. 그것은 정말로 달콤한 익사였다.
처음엔 단순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아이스크림이 커피에 빠진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지만 127번의 아포가토를 만들면서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뜨거운 것에 차가운 것이 빠져 죽는다. 쓴 것에 단 것이 녹아든다. 고체가 액체가 되고, 분리가 융합이 된다. 대립이 조화가 되는 순간. 그것이 아포가토였다.
언제 시작되었을까, 모호한 역사
아포가토의 정확한 기원은 미스터리다.
어떤 이는 에밀리아-로마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거운 식사 후 소화를 돕는 디저트로.
어떤 이는 피에몬테가 고향이라고 주장한다. 아침을 대신하는 든든한 음료로.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탈리아인들의 두 가지 사랑이 만났다는 것. 에스프레소와 젤라또. 이 둘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아포가토'라는 단어가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훨씬 오래전부터 즐겨왔다. 1979년 한 카페 메뉴판에도, 그보다 더 오래된 요리책에도 아포가토는 있었다.
2019년 로마의 한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
"우리 할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 주셨어. 더운 여름날 오후, 정원에서. 직접 만든 젤라또에 모카포트로 내린 진한 커피를 부어주셨지. 그때는 아포가토라고 부르지도 않았어. 그냥 '카페 콘 젤라또'라고 했지."
127번의 실패, 조화로운 조화를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와 그 맛을 재현하려 했다.
첫 번째 실패
아이스크림이 너무 빨리 녹았다. 커피맛 우유가 되어버렸다.
10번째 실패
젤라또가 너무 단단했다. 에스프레소가 표면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50번째 실패
에스프레소가 너무 뜨거웠다. 젤라또가 순식간에 스프처럼 변했다.
100번째 실패
비율이 맞지 않았다. 커피가 너무 많거나, 젤라또가 너무 적었다.
그리고 127번째. 드디어 찾았다. 피렌체에서 먹었던 그 맛.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