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늦가을, 비엔나 링슈트라세.
자허호텔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아인슈페너를 마시러 왔는데, 정작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는 사실을 방금 알았기 때문이다.
"아인슈페너 비테." (아인슈페너 주세요)
나의 서툰 독일어에도 웨이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쟁반에 놓인 작은 잔. 진한 갈색의 커피 위에 하얗게 올려진 생크림의 산. 그리고 옆에 놓인 작은 유리잔의 물.
첫 모금은 차가운 생크림이었다. 두 번째는 뜨거운 커피와 크림이 섞인 부드러움. 세 번째는 진한 에스프레소의 쓴맛. 한 잔에서 세 가지 온도와 맛을 경험하는 마법.
그 순간, 1683년의 빈이 떠올랐다. 터키군이 남기고 간 커피콩이 어떻게 이토록 우아한 문화가 되었을까.
전쟁이 남긴 선물, 커피의 도착
1683년 9월 12일.
2개월간 비엔나를 포위했던 오스만 제국의 15만 대군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신성로마제국 연합군에 패배해 급히 퇴각했다. 그들이 남긴 것 중에는 낙타 옆에 쌓여있던 이상한 콩 자루들이 있었다.
"이게 뭐지? 낙타 사료인가?"
아무도 모르는 이 검은 콩의 정체를 알아본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게오르크 프란츠 콜시츠키(Georg Franz Kolschitzky). 터키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그는 이것이 터키인들이 즐겨 마시는 '카흐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쟁의 영웅이 된 콜시츠키는 포상으로 커피콩 자루들을 모두 받았다. 그리고 1683년, 비엔나 최초의 커피하우스 '푸른 병 아래의 집(Hof zur Blauen Flasche)'을 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터키식 커피는 체즈베라는 주전자에 커피 가루와 물을 함께 넣고 끓이는 방식. 가루가 둥둥 떠다니는 진하고 쓴 커피를 비엔나 사람들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유럽식 변신, 필터와 우유의 만남
콜시츠키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쓴 음료를 비엔나 사람들이 좋아할까?
첫 번째 혁신 - 필터
커피 가루를 걸러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두 번째 혁신 - 달콤함
꿀과 설탕을 넣어 쓴맛을 중화시켰다.
세 번째 혁신 - 우유
뜨거운 우유를 넣어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비엔나 커피'의 시작이었다. 터키의 검은 음료가 유럽의 갈색 음료로 변신하는 순간.
그로부터 2년 후인 1685년, 요한 디오바토가 더 정교한 필터를 개발하고 우유와 꿀의 균형잡힌 비율을 찾아냈다. 비엔나 사람들은 열광했다. 커피하우스는 순식간에 비엔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마부의 한 손 커피, 아인슈페너의 탄생
그런데 왜 생크림일까?
19세기 비엔나의 겨울은 춥고 길었다. 쌍두마차를 모는 마부들은 한 손에는 고삈를, 다른 한 손에는 따뜻한 무언가를 들고 싶었다.
문제는 흔들리는 마차. 뜨거운 커피가 넘쳐 화상을 입기 일쑤였다. 어떻게 하면 커피가 넘치지 않을까?
천재적인 해결책이 나왔다. 커피 위에 두꺼운 생크림을 올리는 것. 생크림이 뚜껑 역할을 하며 커피가 넘치는 것을 막았고, 보온 효과까지 있었다. 게다가 칼로리가 높아 허기진 마부들의 한 끼 식사 대용이 되기도 했다.
아인슈페너(Einspänner)는 '한 마리 말이 끄는 마차'라는 뜻. 마부들이 즐겨 마시던 이 커피는 어느새 비엔나를 대표하는 커피가 되었다.
에필로그
비엔나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전쟁과 평화, 동양과 서양, 쓴맛과 단맛이 만나 탄생한 문화의 결정체다.
오늘도 비엔나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아인슈페너를 주문하고 있을 것이다. 하얀 생크림 구름 아래 숨어있는 검은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340년 전 그 가을날을 떠올리면서.
"커피 한 잔에는 40년의 추억이 담겨있다"
- 터키 속담